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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디지털자산 양극화와 그 不條理 가까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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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디지털자산 양극화와 그 不條理 가까이 보기
  • 블록체인투데이
  • 승인 2023.06.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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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비 김봉길 이사

컴퓨터가 키우는 디지털 빈부 차이.
직시할수록 그 不條理는 커지는 듯하다.
나는 결국 무한대로 만들어지는 
그 어느 블록체인 메인넷의 해시값인가!

◆컴퓨터는 발달할수록 최고의 무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힘겨루기가 그 끝을 모르고 있다. 한때 소비에트연방을 주도하며, 우크라이나를 마음대로 통제했던 러시아. 미국과 함께 핵무기를 앞세워 지구를 양분해 지배했었던 냉전 시대의 영광은 이제 일장춘몽이라는 진리를 말해주는 듯하다. 인간의 내 것 더 여유롭게 갖기라는 자본주의 명제에 밀린 공산주의의 끝자락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이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자연 현상의 한 부분 같다고 우기고 싶은 것을 어찌하랴. 

이쯤이면, 러시아 수뇌부는 핵무기라도 사용하고 싶은 충동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을 법도 하지만, 대의명분 없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는 경우 자신들의 정권은 사라지고, 50년 이상 후퇴하는 후진국이 되리라 알고 있기에, 이제는 전쟁을 끝내려는 명분만 찾는 모양이다. 이번 전쟁도 각국이 가지고 있는 무기의 경연장이라고 한다. 마치 스페인 내전이 막바지에 이르러 나치즘을 표방한 독일 비행기가 스페인 서부 게르니카라는 마을에 ‘융단폭격’이라는 새로운 전쟁 방법을 처음 시도했던 것처럼.

새 무기는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자연의 무기 불을 자유로이 다루면서 지금까지 칼, 창, 활, 화약, 총, 핵, 레이저 등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했다. 이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나라와 국경이 새로 만들어져, 지금을 관통하고, 미래의 한 모습을 계속 만들어 가고 있다. 강한 전자기파를 사용해 기상조절이나 지진을 일으키는 일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생활화되면서, 컴퓨터가 돌이킬 수 없는 전쟁 수단의 중심에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

미래가 다가올수록 인간이 컴퓨터 지배를 받게 되기에 컴퓨터가 최고의 무기라는 말, 맞다. 무서운 더 문제는 새 무기가 등장할 때마다 빈부의 격차는 커진다는 것. 부의 기득권이 컴퓨터를 더 지배할수록, 기득권 지키기가 더 자동화될수록, 힘은 한 곳으로만 급속히 모여들 것. 컴퓨터가 생활화되면 될수록 빈부 격차는 무척 빨라지고 커지고 있는 원인이다. 

◆내 삶도 빈부 틈새의 먼지였다 
컴퓨터 시대를 지날수록 부의 집중으로 인해 몇몇 스타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뒤에는 지역마다 스타를 조종하는 거부들이 다국적기업 총수거나 각국 정치인이 힘을 겨루기도 한다. 물론 그들을 꼭두각시인 양 뒤에서 조종하는 부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 얼굴이나 이름을 감히 알 수도 없을 것. 뭐 그럴 필요도 없지만. 물론, 부의 집중화 현상은 ‘좀 더 여유로운 삶’을 향한 존재 이유일 수도 있으니, 서로 얼굴 붉히며 지껄일 필요도 없지만. 

그랬다. 이 세상 곳곳은 몇몇 사람 힘으로 유지되어왔다. 가정은 가정대로, 마을은 마을, 지역은 지역, 나라는 나라 등의 이름엔 각각 그곳마다 반드시 몇몇 사람들만의 힘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아무리 반성해도 부끄러운 것은, 지난 컴퓨터 시대의 40년을 지내고 이렇게도 중년을 지나치고 있는 작금, 아직도 나는 그 몇몇이 되기 위해 그 몇몇 틈새에서 그 많은 밥을 먹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맞을까? 물론 맞다. 그런데, 맞느냐 아니냐가 내 행복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러나, 참 복잡하게도, 분명 상관이 있다.

나를 포함해, 우리는 그 몇몇이 되고자 하겠거니와, 살아있는 동안, 내가 원하면 나를 찾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 나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순간들을 느끼는 것만으로, 자기 정체감을 확인하고 싶은 것. 그 확인이 대부분 행복감이라고 느끼고자 하는 것. 이 느낌이 점점 넓게 퍼지고 높이 쌓임으로써 세상이 내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웃고 싶은 것이었다. 이것이 내 본능, 나만의 알량한 천성일까. 허, 뭐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그 몇몇이 되기 위해, 나는 수없이 새로움을 추구해 왔다. 그 새로움의 매듭마다, 이 세상엔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거라며, 엉뚱한 생각을 하려 했었다. 그래, 이것만은 처음일 거라는 억지 꿈을 꾸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보다 다르고, 어제 했던 행동보다 다른, 조금은 새로운 움직임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싶었다. 바보 같다거나, 미쳤다거나, 괴상하다는 말을 듣는 것쯤이야, 웃으며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릴 것 또한 분명했다. 반성이나 성찰할 틈도 없이.

◆힘 축적을 향한 반복, 그 실망 직시하기
그런데, 더 문제는 아무리 다람쥐 쳇바퀴 도는 반성을 되풀이하더라도, 힘이 생기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나 같은 생각을 했을 테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사람만이 결국 승자가 되어 왔다. 이들에 의해 사회의 큰 흐름이 어떠하다고 정의되고, 그 흐름에 자신의 마음과 몸을 던지고, 평소 그 의지를 쌓고 쌓는 자만이 기록으로 남았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 가며, 자신을 앞으로 내미는 행보를 수없이 내디뎠을 것. 자신의 확고한 가능성을 가지고, 생명이 다하도록 반복하며 존재했었으리라.

분명, 그 많은 세대는 그 반복을 다시 반복하다가 사라졌다. 나 또한 앞 세대들이 남긴 몇몇 모습을 보고, 비슷한 반복을 경쟁하며 산 듯하다. 그래, 그것이 의미 있다고, 그 의미를 따르겠다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되새기며 말이다. 그 중, 나도 있다. 결국, 내가 지나쳐온 모든 행동이란 그 많은 사람의 결과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 블록체인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것도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데, 지금 생존해야 한다는 이름으로, 부끄럽게도 이것이 행복이라며, 컴퓨터 앞에서 이렇게 문자를 같은 의미를 반복해 나열하고 있다.

그랬다. 권력층 이하 다른 계층으로 오래 굳어진 사회 구조. 이 속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서로 다름으로 인한 갈등.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른 생각으로 빚어진 수많은 이야기의 유산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네들, 아니 지금 살아있는 나다. 가진 것을 지키려 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하지 않느냐?’라는 끊임없는 질문과 그 답을 구하고자 하는 지금, 나는 과연 쓸데없는 걱정으로 지금을 허송세월 보내는 것은 아닐까, 이도 행복에 겨운 걱정이라며 말이다. 나야말로 부조리가 부조리인 줄도 모르고 ‘나만의 황금 한 조각’인 양 들고 웃는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이 마주 보다가 등을 돌리다가 뭐 그렇게 서로 핑계 대는, 내 영원한 삶의 갈등인 부조리. 이 문제를 풀고 싶은 나에게 혹자는 몇몇 풀리지 않는 욕심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저 영광스러운 욕심이란 내가 살아있기에 생긴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내 생존 이름의 본능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래, 나도 자연물의 하나이니, 그냥 컴퓨터 끼고 사는 일도 자연 현상이라 매듭지어야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참 비겁하다. 참 실망스럽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비겁하다고 실망스럽다고 기록해 두어야 한다. 

◆세상 부조리는 나로부터 생긴다
한 때, 컴퓨터 문명의 특이점을 지나게 되면 존재하는 가치는 모두 디지털 숫자로 나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또한, 말과 행동이 다른 부조리한 상황이란 무엇인가 나만 가졌다고 느끼는 엉뚱한 신비로움으로부터 생겨난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래서 블록체인이라는 이론을 접했을 때, 어떤 블록마다 내 생각과 행동들이 그대로 수치화되어 계속 그 기록들이 연결되면 부조리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고 느꼈었다. 이러한 일이 실현되는 날, 세상은 참으로 깨끗해질 것이라 믿었었다. 모든 인간 행위가 실시간으로 누구나 볼 수 있다면, 누구나 정직한 삶을 살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이, 내가 만든 허구에 의한, 아니 한갓 내 욕심에 불과한, 생존경쟁의 하나로서 어떠한 변명이 필요 없는, 내가 만든 부조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많은 프로그래머나 학교 교과과정에 있기에, 싫든 좋든, 컴퓨터 프로그램 코딩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학생이 늘고 있다. 직업 이상으로 하나의 생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디지털로 가치화가 가능한 모든 기능을 컴퓨터 프로그램 코드 모음이 공개되기에 서로서 이들을 이용해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바로 깃허브(GitHub)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온 부조리마다 칼을 들이미는 모든 법전조차, 이 공유 방법론 앞에 무색해지는바, 이젠 이를 그저 새로운 현상일 뿐이라며 넘겨야 한 번 더 웃는 길이리라. 

인간이 첫 두 발로 설 때든, 아무리 문명이 발전하든, 지금 내 생명이 유지되는 한, 그 생명이 서로 키재기하고 있는 한, 부조리한 현상은 무한대로 존재할 것. 그 모든 현상의 시작이 항상 나로부터 생긴다는 사실을 나는 어떻게 더 확인해야 할 것인가. 대부분 혹자는 굳이 왜 확인해야 하느냐 물을지도 모른다. 이미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내 유전자가 정해졌고, 언제 어디서 살 것이며, 그렇게 멋진 마무리를 하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나를 확인하다니, 이보다 더 부조리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내 부조리를 내가 만들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얼마나 긴 산책을 해야 할 것인가.

자, 그렇다면, 컴퓨터 삶을 영위하고 있는 나는, 당연하게 아니 자연스럽게, ‘나의 부조리 현상’을 ‘물은 흐르고 바람은 부는 것’이라는 답안을 채워야 한다. 나는 계속 생겨나는 내 빈칸에 어떤 답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까. 이 세상이 거대 자본가에 의해 진행되는, 컴퓨터 중심의 ‘위대한 처음’이라는, ‘또 다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라는, 모범답안 하나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원자폭탄이 힘 있는 자의 실험으로 사용했듯, 수많은 사람이 어떻게 되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그래서 어떤 이유도 모른 채 사라져가야 하는 그냥 인간으로서, 새로운 컴퓨터라는 무기의 시험장의 희생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지금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은 한 번 정도는 이러한 갈등을 느꼈으리라는 가정을 해본다. 잠시 눈을 감고, 용의 등에 올라 구름 사이를 날아가 본다. 용의 꼬리에 끈을 매달아 잡고 ‘야호’ 하고 외쳐 본다. 외치면서, 다시 나는 왜 계속 이 이율배반적인, 그래서 뫼비우스 띠처럼 끝을 모르는 몽상을 이어가고 있는지, 내 속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보고 싶어, 입에 꺼내 우물거리다가 ‘야호’ 하고 외칠 때 하늘에다 내뱉어 본다. 그런데 씹을 땐 있었는데, 밖으로 내 뿜으니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아, 이것이 내 능력으로 풀지 못하는 부조리라는 것인가. 혹여, 그동안 몇몇 사람들도 나 같은 고민을 했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나는 결국 블록체인 메인넷의 해시값
40년 가까이 개인 컴퓨터 시대를 거치면서 암호학의 빠른 발전이 블록체인 이론을 현실화시키고 있음을 다시 확인해 본다. 대표 암호화폐가 새로운 시대 주인공이 되면서, 각국 통화는 점점 힘을 잃어가리라는 신화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써 본다. 물론 국가 대부분은 몇몇 힘을 합친 다국적기업 연합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하리라 추측도 해본다. 전쟁도 국가 간이 아닌, 다국적기업 간에 일어나는 것일지 누가 알겠는가. 이즘이면, 부조리란 말이 없어지거나 정의도 바뀌게 될 듯도 하다. 바라건대, 또 다른 니체나 피카소 같은 이들이 몇 달 사이에라도 자주 나타나, 너와 나의 정체성 토론과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 마당을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요즘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나를 따르라’ 전쟁은, 인류 존폐와 상관없이, 몇몇 기득권자들 간의 돈 자랑질 같다. 동서양의 충돌이라며 기웃거리는 나는 이제 막 타오르는 산불 구경하듯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이렇게 멍청해질 때마다, 어쩌면, 마음만 먹으면 모든 국가의 국적을 가졌다 버렸다 하는 사람들의 힘겨룸 장난질일 거라는 별별 상상도 한다. 그랬다, 돈 자랑질이나 힘 장난질이란 결국은 내 생존 욕구에서 시작되었다고 다시 확인하는 셈이었다. 그러니, 그 누가 암호화폐를 등장시키며, 새로운 무기의 경연장이 등장했다며, 나보고 무한대 욕망 표출이라도 하려며, 콜로세움의 로마시민처럼 떠들다가 사라지라고 한들 뭐 어쩌겠느냐는 거다.

나이가 들수록 평범함을 추구한다고 한다. 땅에서 하늘까지 평범한 순간 몇 개를 건드릴 때마다 행복과 웃음이 까르르거리는 것을 느끼려 한다는 말이다. 컴퓨터든 인공지능이든 블록체인이든 어떤 첨단 문명 쪼가리든 그저 살며 생겨나는 시간의 파편이거늘, 뭐 그리도 삶의 고리에 묶어놓고 매달리려는지. 그러함에도 또다시 남은 나만의 시간이 소중하다며 어떻게든 또 다른 새로움을 쫓는 나의 일상이라니. 이러한 내 갈등이란, 내 부조리한 느낌이란, 결국 내가 만드는 것이니, 내가 앞뒤가 맞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니, 계속 고개 숙일 수밖에. 맞다. 계속 성찰을 하고, 내 새로움의 무게를 내려놓은 반성을 계속 반복하노라면, 혹여 부조리라는 갈등 원인이 그 하얀색을 되찾으리라는 투의 변명거리라도 남겨야 한다. 그래, 실낱같은 이러한 기대가 내 숨 맛을 더 느끼게 한다. 참 신기하다.

지금까지 컴퓨터 속에 넣어다 뺐다 하며 만졌던 것을, 내가 만든 부조리라는 데이터를, 그 나를 블록체인 속에 넣어두고 싶다. 누구라도 내 마음과 몸을 오가며, 이것도 즐거움이라며 세상모르게 들쑥날쑥 살았던 나를 들여다보게. 그래서, 이다음 어느 즈음에, 조금이나마 덜 아프고 그냥 마음 편하고 싶었던 내 본능을 나도 쳐다볼 수 있게. 이렇게나마, 누구나 볼 수 있는 구름 같은 나는 무한대로 만들어지는 그 어느 블록체인 메인넷의 해시값이라도 되기를. 어느 날 문득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창가에 서서, 낮이 지나고 밤이 지나도, 나는 저 하늘 어디선가 제 고개를 곳곳이 들고 다니는 전파인지 그 무엇인지를 나인가 하여 한 번이라도 쳐다나 보게. 

info@blockchai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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