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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블록체인 새벽, 먼저 깨어 멋지게 놀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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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블록체인 새벽, 먼저 깨어 멋지게 놀아야
  • 블록체인투데이
  • 승인 2023.03.0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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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 밈비 이사 / 시인

블록체인, 그 새벽이 온다. 
다시 새로우니 평등하다. 
그러나, 현실 앞에선 
어떤 이론도 무력해진다. 
먼 미래, 
노는 것도 일이라고 하는데! 
욕심부리자, 
블록체인 세상 먼저 잡고 놀자.

◆새벽이다, 다시 새로우니 평등하다
우연이었다, 내게 참 많은 낮과 밤이 있었다고 느낀 것은. 낮에 해, 밤에 별, 그 사이의 달, 뭐 이 구분은 그저 자연현상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도 우연. 물이든 불이든, 사람이든 또 내가 지금 기르고 있는 고양이든 금붕어든 자연의 하나라는 것, 이를 떠올린 것도 깊은 밤중에 잠을 깬 우연의 느낌이었다. 물론 돈도 컴퓨터도, 또 블록체인도 지구에 있는 자연물의 하나일 뿐. 당연히 나도 그러하다. 이즘이면,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구분은 참 쓸데없는 일. 이렇게 나를 움켜쥔 나의 밤은, 그 누구의 것 같은, 새벽으로 가기 시작했다.

이 새벽이 끝날 즈음, 나는 세상이거나 자연이 정해 놓은, 내 어떤 습관처럼, 아침 꿈속에 잠깐 들어갔다 나올 것이다. 유유상종. 지구가 생겨나고, 내 생명이 생겨날 때부터, 어쩌면 내 것과 또 아닌 것이 서로 만들어졌으리라. 그 생명의 하나가 내가 되었고, 그 나는 어느 힘에 속해졌고, 그래서 지금 움직이고 숨 쉬고 있다. 내 숨 맛을 보며, 슬쩍 웃으면서, 몇 개 나를 위한 생각과 이 문장을 나열하면서, 힘과 돈과 블록체인 무게를 재면서 말이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대로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물론 나만의 숨결을 느끼는 그 순간마다, 그때마다 무엇인가 만들어진다는 말도 또 있다. 그런데, 내겐 누가 옆에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이 두 가지 우스꽝스러움이 그 힘을 잃는다. 허, 그것참! 무엇이 즐거움인지 아닌지, 아무리 얼굴을 매만져 쓰다듬어도 내가 누구에 의해 어떤 느낌이 생기다니, 그것참 묘한 느낌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말도 참 잘 만들어졌다. 설상가상, 법 앞에서는, 신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고 하는 말도 참으로 멋지다. 그러하니, 누구나 태어나고 사라진다는 말은 그야말로, 싱겁긴 하지만, 위대하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는 10년 되었고, 금붕어는 1년이 넘었고, 우리 가족은 20년째 이 집에서 살고 있다. 물론, 이 말은 나에게 더욱 위대하다. 보이는, 들리는, 느껴지는 것들이 참으로 새롭게 그래서 평등하게 보이는 참 이른 새벽이다. 새벽은 새로움이니까, 그래서 모두 위대하니까.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으니까.

60대 후반의 뒷마당을 고개 기웃 돌아보면, 지구에서 한반도에서 천안과 서울 문래동, 그 몇 곳에서 잠자고 먹고 웃고 떠들고 싸우고 걸어 다니고, 뭐 그렇게 실타래처럼, 데이터베이스 주소 나열처럼, 내 시간 그 시간이 오며 가며 서로 웃는 것 같다. 최근 먹고 사는 일이란, 내 힘이 얼마나 있는지 느끼려 했던 애씀인 듯. 이 느낌에 내 맘도 몸도 나와 상관없이 조금씩 흔들거리거나 빙빙 도는 느낌으로 남아, 내 새벽의 끝을 향하고 있다.

한 때, 세상은 평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마 참 어렸을 때였으리라. 참으로 세상모르고 살았던 때. 평평한 세상에서 보이는 것마다 참으로 신기했던 적이었다. 그 평평한 세상이, 진정 세상은 평등하다고 믿고 싶기에, 언제나 손톱 때처럼 느끼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도 그랬을까? 가끔, 금붕어도? 그들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기에? 내가 그들을 기르며, 나도 자연물이구나 하는 즐거움을 느끼려고? 그 모두 평등하다고?

◆현실, 이 앞에선 어떤 이론도 무력해진다
어쩌면, 고양이처럼 금붕어처럼, 누군가가 나를 보고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보다 먼저 태어났고, 내가 모르는 힘을 그들은 가졌고, 그 힘은 불멸의 에너지가 되어,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되어, 그들의 손톱 때로 여겨지며, 내 움직거림을, 이러한 움직임을 쳐다보며, 먼 저 하늘 멋진 곳에서, 웃음이란 말밖에 없는 곳에서, 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들이나 나나 고양이나 금붕어나 이 지구는 이 우주는 이 새벽은 뭐 다르지 않다고, 이 새벽이 나에게 외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몇 년째 블록체인이란 단어를 끼고 살았다. 이 단어들을 나열해 놓고, 내 시간과 내 힘을 얹혀 놓고, 세상 움직이는 것을 보며 지냈다. 생각보다 시간과 힘이 펄떡이는 것을 보았다. 물을 갈아주면, 다시 보기 좋은 금붕어로 보이는 것처럼, 사료와 물을 달라고 방바닥을 뒹구는 고양이, 그 고양이를 안아 보는 것처럼, 블록체인의 한 블록에 존재하는 나도, 다음 블록에도 내가 다시 등장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내가 나에게라도 무엇인가 새로워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처음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구 위에 태양이, 태양 위에 또 무엇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말이다. 1% 사람이 99%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을 믿을까? 이런 말을 싫다고, 몇 번이라고 이를 우기고 싶은 것처럼, 극히 적은 수의 비트코인 지갑이 대다수의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싫은데 믿을까? 아니, 그냥 편하게, 극히 일부 사람 몇몇이 세계 여유로운 돈의 99%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을 그냥 믿을까? 세상은 처음부터 불평등한 것이라고, 그것이 평등한 것이라고 믿을까?

사람이 만든 기록의 힘이 법을 만들었고, 그 법을 손에 쥔 사람이 돈을 만들고 가졌다. 맞는 말이다. 그들이 먼저 돈을 가졌고, 돈을 먼저 가진 그 사람들에 의해 첨단 문명이 만들어졌다. 이도 맞는 말이다. 돈이 돈을 낳았고, 신용이란 말을 만들었고, 컴퓨터도 통신도 만들었고, 그렇게 지금 문명을 만들고 있으니, 그때마다 새 이론이 등장하고 있으니, 이젠 그 사람들이 지금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해야 할까 보다. 블록체인도 암호화폐도 이들의 것이라고 미리 말해주어야 할까 보다. 그래, 이것만이 고양이와 금붕어가 먹이를 얻어먹는 것처럼, 나도 무엇인가 먹을 수 있고, 적당히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어떤 이론도 현실 앞에선 무력해지니, 나 또한 재빨리 적응해야 하는 것, 허허,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먹은 밥이나 물이 몇 그릇 몇 잔이 될까? 셀 필요 없다. 지금 살아있으니. 이렇게 움직일 힘을 느끼고 있으니. 그동안 내 힘으로 일을 했을 터이니, 또, 몇 시간 일했다는 것을 셌다면? 그래, 정확하다. 이러한 나 같은 사람을 세었다면, 물론 더 정확할 것. 몇 겁을 거치면서, 그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사용할 돈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요즈음, 누구나 맞다 할 것이다. 일하는 만큼 돈이 노동의 대가로 주어졌고,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무한대로 돈이 늘어나는 것. 지당한 말이고, 현실이다.

◆먼 미래, 노는 것도 일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돈을 먼저 가진 사람들은 이제 사람의 노동을 로봇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다. 사람이 하는 노동보다 로봇의 노동을 선택했다. 어쩌면, 무척이나 인간적인 선택이다. 물론, 로봇이 사람을 안전하게 떠받들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선택한 것. 참 멋지다. 사람이 이제 일을 점점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일부 사람만이 일하는 로봇을 만들고, 대부분 사람이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말인즉, 로봇이 일해서 대부분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일해서, 노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는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원하는 만큼 충분히 줄지, 아니면, 똑같이 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마도 로봇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렇다면, 먼저 돈을 가진 극히 일부 사람이 대다수 사람에게 돈을 나누어 준다고 봐야 할 텐데, 그렇다면, 돈 주는 그들 마음에 달렸다는 말이다. 고양이나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고 싶으면 주고 아니면 말고 하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또 잠을 자는지 안 자는지 모르는, 나도 고양이나 금붕어와 같을 수 있다는, 참으로 헷갈리는 새벽녘이다.

돈을 나누어주다가, 그들은 어쩌면, 돈을 나눌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돈을 나누어주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동안 무한대로 찍어냈던 종이 화폐를 신용카드로 사용하던 화폐를 이젠 블록체인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 가고 있다. 대다수 사람이 불만을 토로하기 전에, 대부분 사람이 모여 혁명을 일으키기 전에, 암호화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세계 화폐를 만들어 그 돈으로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나누어 주려는 것. 날이 조금 밝아올수록 희한한 생각을 더욱 떨칠 수 없다. 

시간이 더 흐를수록 세상 사람이 너무 많다며,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기기도 하지만, 자연발생적인 아니 치명적인 전염병이 만들어지길 기다기는 듯도 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람 수가 줄어드는 것, 이도 계획한 것 맞을까? 무척이나, 수백 년 연구된 연구 결과를 실행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여, 갑자기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을 어쩌랴. 그래, 그러나, 이제 이런 상상은 그만 멈추어야 한다. 이 쓸데없을 것 같은 생각을 이 새벽이 더 밝기 전에 어떻게 끝내야 할까? 허, 참 별 걱정 다 해본다. 피식, 웃지도 않고.

한때, 노동의 대가는 신성한 것이라고 믿었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했었다. 블록체인 이론이 숭고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승계한 것이라며 떠들고 다녔었다. 똑같이 생산하고 똑같이 나누자는 아름다움 말을 실천할 수 있을 거라며 컴퓨터에다 대고 쓰고 또 써보았었다. 그런데, 고양이도 금붕어도 그저 제 할 일만 할 뿐이었다. 나도 내 할 일을 할 뿐일 거다. 그런데, 블록체인 단어를 사용한 덕분에 할 일이 생겨난 것 같은데도, 무엇이 아쉬운지, 아쉬운 게 뭐 그리 많은지, 새벽이 끝나기 전에 하나의 의미를 더 갖고 싶어 하다니, 머리가 잠시 띵해져 고개를 서너 번 휘휘 돌려 본다.

그래도, 사람은 참으로 위대하다. 살아있는 모두는 참으로 아름답다. 블록체인 이론도 에너지 불변의 법칙도 자연의 약육강식 법칙도 모두 멋지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고, 나는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래서 이를 믿는 만큼 나도 멋지다니, 이 어찌 영광이 아닐 것이냐! 나는 이제 일을 점점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일이 줄어드니, 할 일이란 뭐 노는 것이 제일 중요할 수밖에 없을 것.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나는 얼마나 어떻게 아름답게 놀아야 할 것인가? 참으로 더 어렵지만, 새로운 노는 일을 찾아야 하니, 웃을 수 없는 참으로 즐거운 비명이 아닐 수 없다. 

미래로 갈수록 더욱 놀아야 한다고 한다. 한편으로 걱정이다. 그때도 고양이 재롱을 보면서, 어항 속 뻐끔거리는 금붕어를 보면서 살기에는 참으로 너무 심심할 것 같다. 나는 이 새벽이 끝나 세상이 훤해지기 전에 앞으로 무엇을 하며 놀까 고민을 해야 한다. 우선 창을 먼저 닫아야 할까? 날이 밝은 것을 보면,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아서다. 아직 낮에는 일해야 한다는 아직 펄펄 넘치는 인간 습성 때문이리라. 아니, 무엇인가 모두 보이는 곳에선, 내가 노는 것을 모두 볼 것 같아서다. 나도 저들이 노는 것을 볼 것 같아서다. 노는 것이 서로서로 비슷할 것 같아서이다. 왜? 비슷하면 재미가 떨어지니까.

◆욕심부리자, 블록체인 세상 먼저 잡고 놀자
다시 유유상종이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서로 노는 일. 그 안에선 뭐 고만고만할 것이다. 낮과 밤에 노는 것이나, 바다며 강가에서 사는 것이나, 북극이며 남극이거나 적도 지역이거나,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다. 고양이나 금붕어나 나나, 서로 섞여 사는 것도 뭐 다를까. 세상이 평등하다고 우기며, 지구가 아무리 크다손 멀리서 보면 금붕어보다 작게 보일 것. 그래, 그래도 존재하는 것 모두 비슷할 것이거늘, 블록체인이든 메타버스 세상이든 이도 내 세상이라며, 내 세상 한번 소풍 나왔으니, 기왕이면 멋지게 놀고 가야 할 것은 분명하다.

먼 미래, 첨단 문명 이후에는, 이미 존재했었던 사람들과 또 태어날 사람들, 그 모두 멋지게 노는 일만이 중요할 것. 그들의 무한대 상상처럼 나도, 어떠한 것들도 그 모두 한 번은 기록되었던 것처럼, 나도 내 가슴에 멋지게 기록해야 할 것이니, 지금 나열하는 글도 매듭지어 어디에든 남겨두어야 한다. 내 삶이란 매듭 지어진 기록들의 연속이어야 하니, 그 명쾌한 욕심은 좀 부려도 괜찮을 것 같으니 그렇다. 

그래, 이 기록은 여기쯤 끝내야 한다. 뭔가 매듭지을 땐, 한 줄 기록이니, 한 개 블록이니, 암호 맞추기니 하는 블록체인도, 무슨 이론이니 법칙이 하는 말, 또 그런저런 말 모두 무의미하다. 서서히 드러나는 갓밝이로 인해 내 모습 뚜렷해지니,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고 싶은 새벽이니, 멍청히라도 웃어야 한다. 그렇다. 이럴 때는 나의 경우, 나를 살게 하는 힘은, 결국, 내 욕심에서 생겨나고 있음을 또 확인하는 것이었다. 나를 멋지게 놀게 하고 싶은 내 욕심. 

욕심이 삶의 충동이라고 더 믿고 싶은 새벽이다. 누가 뭐래도 좋다, 요즘, 블록체인이 생활 속으로 막 들어오기 시작하는 새벽이라 외쳐도 맞을 테니. 그래, 기왕이면 더 욕심을 내어 먼저 깨자. 새로움을 입에 넣어 확인하는 지금, 지금은 자유인이다. 자유도 욕심부리는 자에게 그 기회가 더 생기는 것 맞다. 자, 이제 세상은 블록체인 새벽이다. 먼저 깨어 멋지게 놀자!

info@blockchai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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