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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의로운 사회를 향한 ‘의플랫폼’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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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의로운 사회를 향한 ‘의플랫폼’ 상상
  • 블록체인투데이
  • 승인 2023.07.1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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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비 김봉길 이사

누가 내게 의롭다고 하며 돈을 주었다.
나도 의로운 사람에게 돈을 주었다.
이 사실들이 블록체인 플랫폼에 실렸다.
아, 그런 마음으로 모두 살아간다면?
백년 후, 지금보다 아름다운 세상일 것!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문명이 발달할수록 부의 집중이 더 심해진다는 것, 이제 새삼스러운 말도 아니다. 부를 움켜쥘 수단이 더 고도화된다는 말도 싱겁다. 어쩌면, 거대 다국적기업이 끼리끼리 뭉치면 지구 전 재산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다는 말까지 하나 더하기 하나다. 이젠, 이러한 것을 자랑이라도 하는 양, 지구를 거머쥔 이들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또 네델란드 빌더버그에서, 물론 그들만의 자리에서, ‘그들을 위한, 그들에 의한, 그들만의 회의’를 경쟁하듯 열고 있다. 법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는 무기를 어떻게 휘두를까 하는 회의요, 자신들만의 미래를 위한 법을 어떻게 더 만들고 없앨까 하는 회의다.

한편,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처럼 지금도 이 세상이 신뢰와 평등의 꽃밭만 있기를 바라며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또 의로운 사람이 더 많아지라고 외치며 머나먼 집 밖 생활을 견디는 사람들도 또한 많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 입을 마스크로 틀어막은 저 절대 권력자 앞에서 평등은 무엇이고 의로운 삶이 어떻고 하는 블록체인 플랫폼 이야기를 외쳐대는 일은 참으로 꼴불견일 수도 있겠다. 그 누구도, 지금 생존하기 위한 돈이라는 숫자 앞에선, 그저 이용당해야 하는 시간의 파편일 수 있으니 그렇다. 백사장 모래 한 개 더하듯, 그저 지구에 살았던 사람 그 숫자 하나 늘리기 같으니 말이다. 오늘도 또 부의 블랙홀을 바라보며 빨려들어 가는 나는 그저 구름 같은 허수아비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나도 허수아비요 하며 남은 날을 살기에 억울하니 어쩔 것인가. 하여, 나 또한 ‘끝까지 믿으며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자’라며 한 번은 크게 외쳐대야 하니, 유행가처럼 내 마음 나도 모르니, 참 어쩔 수 없다. 가끔 맑은 하늘 흐르는 구름을 볼 적, 인간 개개인 모두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결국, 이러한 상상은 ‘그래도 그 몇몇이 아닌, 무엇인가 새롭게 삼삼오오가 나타났으면!’ 하는 또 다른 상상의 꼬리를 만들곤 했다. 그 결과, 3년 전 즈음, ‘신뢰와 평등을 위한 블록체인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가능해질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최근, 이 세상이 의롭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같은 나이의 사회 동료와 최근 자주 만났다. 만난 지 20년 가까이 되는 그는 이 세상이 ‘의’라는 이름으로 옷을 다 입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나 나나, 내가 상상하는 것은 이미 누구나 있었던 것이라며, 하나라도 먼저 행동으로 옮기자는 말도 나누었다. 하여, 새 도전으로 ‘신뢰와 평등’이라는 말을 ‘의로움’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다시 정리해 본다. 얼마나 행동으로 옮겨질지는? 그다음 문제다.

누구나 의로운 행동을 하고 싶다
의로운 세상은 올까 하는 꿈을 많은 사람이 꾸었으리라. 멍청한 질문이지만, 몇 명 즈음일까? 먼저, 그동안 지구에 살았던 사람부터 따져보자. 수백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를 지나 1만 년 전 신석기시대까지 500~1000억, 그 이후 산업혁명의 1750년까지 500~1000억, 그리고 그다음 살았던 사람이 200억 등등이라고 한다. 태고 때부터 성인으로 산 사람은 대략 1200~2200억이라는 억측도 가능. 현재 80억 명 정도가 살고 있으니, 나는 3~7% 확률의 사람이다. 아, 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아마도, 이러한 영광을 느끼기에, 사람들 눈에 안 드러나게, 의롭게 행동하려는 사람 수는 그래도 40억 명 이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만의 엉뚱함일까?

인간으로서 느끼는 영광을 다시 확인하는 지금, 참 행복하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행복감을 느끼리라 상상해본다. 그렇다.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이 내 나이가 얼마냐 하는 것보다 우선한다. 기껏해야 신체의 나이, 지혜의 나이, 지식의 나이, 재산의 나이, 욕심 내려놓는 나이 등등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다른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에 그렇다. 결국, 행복의 나이는 서로 비슷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맞다.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 그런데, 누구나 존중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참 우습게도, 항상 앞 순번 정하는 일에 서로 앞장을 서곤 했다. 이도 어떨 땐 의로운 행동이라며 말이다.

의로운 행동은 상대를 인정하는 일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런데 쉽지만은 않다. 어떤 이유에서든 상대 인정이란 내 희생이 먼저 따르기 때문. 승부의 세계에서 감히 내 패를 먼저 보이는 일일 것. 나는 이러저러하니 나와 함께 이러저러하지 않겠느냐는 의사 표현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당장 힘들지만, 마지막엔 마음 깊은 행복감을 느끼는 이가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 의로운 행동이란 사람과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옳게 살고 싶기에, 이 다름의 차이를 반복해 기록하는 것이 어쩌면 태어난 사람 모두 바랬던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이렇듯 달라진 것을, 내가 행동했던 사실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보다 앞으로가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역사의 기록에 의해 문화로 혹은 문명으로 지금을 이루고 있다. 물론 누구나 지금 이 속에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론이 모두 그러하겠지만, 작금의 블록체인 이론도 그동안 살았던 사람의 무한대 시행착오를 줄이려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상상을 또 해본다. 내 쓸데없는 반복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 기대가 인간의 새로운 본능을 탄생시키려는 인간 진화의 하나일지 누가 알겠는가. 물론, 본능에 따른 움직임은 그동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본능이 자연스러우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되는 경우, 매번 그 순간, 본능은 욕망으로 바뀌었다. 내가 그랬다. 그러니, 내 행동을 모두 기록해 두고 모두 볼 수 있다면, 그것을 느끼고 움직인다면, 누구에게든 드러낼 수 있다면, 그래서 행복하다면, 참 얼마나 좋을까.

블록체인, 의로운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무한대에 가까울 수도 있는 내 기억을 근거로 쓸데없는 반복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블록체인 이론이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면, 아마도 인간 DNA가 바뀌리라는 상상도 감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록체인 플랫폼 한 귀퉁이에 내가 한 행위 모두를 기록하고,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면? 그렇다면, 참으로 나부터 먼저 보이며, ‘우리 함께 도우며 살아가자’라고 먼저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이즈음에서 누구나 쓸데없이 반복하는 내 행동을 순식간에 즉시 멈출 것도 같다. 맞다. 이 정도라면, 컴퓨터 다음 문명에서 나와 직면할 ‘나만을 위한 아바타’도 내 마음과 일치된 행동 지침을 웃으며 제시해 주리라.

만일, 세상 모든 플랫폼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나아가 생성형 인공지능의 정점 다음 세상의 플랫폼에서 내 아바타가 자라게 된다면, 그런 세상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행복감을 느껴야 할까. 이럴지도 모른다. 내 어떤 행동이 다른 누구를 즐겁게 할까? 이 물음에 답하는 공부가 삶의 전부가 되지 않을까? 이러한 세상이 과연 올까? 나는 ‘고도를 기다리며’ 주인공이 되어 오지 않을 세상을 기다리며, 오도록 노력하는 일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매번 노력하지 않는다. 이 일이 무척 행복한 것임을 알면서도 매번 놓친다.

누구나 행복해지려 산다. 의로운 행동이 곧 행복이다고 한다면, 그 의로운 행동 시작은, 내가 아는 사람의 좋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마지막도 그러하면 되리라 믿으면 어떨까. 문제는 생명체 모두가 가진 좋은 점을 어떤 근거로 어떻게 언급하느냐다. 살아온 과정이 다 다른데, 어떻게 상호 비교에 따른 정형화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느냐는 것.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숫자로 정한다. 그 숫자의 으뜸 성적이다. 공개경쟁에 따른 결과에 따라 실력이 좋은 사람에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상을 주는 것, 무척 공평하다. 그러나, 그 결과 세상은 지금까지 이긴 사람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승자독식의 세상, 이 진리처럼 보이는 숫자 나열 세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평등’을 외치는 소리는 왜 더 커져만 갈까. 이긴 자만이 존재하는 숫자 나열의 세상은 결코 의로운 행동과 비례하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지구에서 이기는 사람이 독식하는 것이라는 말이 작아지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답은 없다. 자연의 법칙일 수 있으니. 다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지금 살아있는 80억 명이 저마다 의로운 행동을 하도록 스스로 깨우치는 수밖에. 물론 이도 불가능하다.

자, 컴퓨터 발전의 덕에 ‘의플랫폼’이 있다고 하자. 그 누군가 ‘지금 내가 의로운 행동을 했다’라며 여기에 기록해준다면? 누구나 그 내용을 언제든 볼 수 있다면? ‘의로운 행동이다’라는 기록에 시시비비가 붙고, 그 시비 결과가 의로운 행동이었다고 계속 공개된다면? 또 그 공개된 것들이 영구 보존될 수 있다면? 이러한 답의 결과를, 지금까지는 인간 저마다의 기록들이 모여져 법이 만들어지듯, 앞으로는 블록체인 기술 집약체가 그때마다 보존해 줄 것이고, ‘이것이 곧 법보다 우선’한다고 상상한다면 어떨까. 

22C 새 문명 코드는 ‘의’가 되기를!
다음은 어떤 <의로운 기록 보존을 위한 ‘의플랫폼’>을 가정해 떠올려 본 상상이다. 많은 사람이 다양하게 생각해 왔었을 것이겠으나, 단순히 ‘의’라는 말을 중심으로, 내 주관적인 시각에서, 앞뒤 따지지 않고 나열해 본다. 

① 한국 ‘의재단’이 블록체인 시대를 대비해 세계인을 대상으로 ‘의플랫폼’을 제작했다고 가정해 보자. A라는 국가가 ‘의재단’에 이 플랫폼 운영해 달라는 요청이 있다면, 이는 A국과 우리나라는 무척이나 가까운 국가가 될 것. 그러한 국가가 많아질수록 세계는 의로운 사람이 많아질 것. 물론 한국이 먼저 A국이 되길 바라지만.

② A국가에서는 먼저 '의기금'을 계속 축적해야 할 것. 그 기금은 A국가의 교육단체나 교육재단에 위탁을 하고, 감독하는 것이 좋을 듯. A국가는 자국의 학교에 의실천 방안과 그 교육 방침을 제공하고, 교사의 재교육 시행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③ 학교에서는 국가 방침에 근거해 플랫폼 이해와 사용법을 학생들에게 숙지시킴. 에 대한 기본 교육을 시킨다. 물론, 의로운 행동 사례를 개발하고, 학생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인지 이해하도록 교육시킴.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 단체나 재단은 국가로부터 위탁받은 '의기금'을 공탁하고 일정한 '의포인트'를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④ 모든 학생은 평소 의로운 행동이 곧 행복임을 이해했다고 상상해보자. 이 학생들은 균등히 제공된 '의포인트'가 계속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수록 자아정체성이 뚜렷해지리라는 기대가 크다. I 학생이 의로운 행동을 한 학생에게 ‘의플랫폼’ 기록란에 그 행동을 자세히 기록해 근거를 남김과 동시에 자신의 '의포인트'를 주었다고 상상해보자. 생각만 해도 즐겁다. I 학생이 남긴 근거는 하나의 사례가 되어 모든 학생에게 공개된다. '의플랫폼'의 힘은 여기서 발휘된다. 공개된 사례가 많은 학생에게 알려지게 되고, 학생마다 사례에 대해 느낀 점을 기록하게 된다면, 그 사례는 자연스럽게 시시비비가 가려지고, 이는 학생들이나 인공지능 검색엔진에 의해 언제든지 인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례가 인용될 때마다 '의포인트'가 I 학생에게 제공된다는 상상도 무척 고무적이다. 

⑤ 학생의 '의포인트'는 블록체인상에서 법정화폐 가치를 가진 지불수단으로 교환해 사용할 수 있다. 이는 학생의 자유다. 다만, 교환할 때 그 사용 목적을 내 '의포인트' 사용처 기록란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돈이 없어 점심을 걸렀다. 저녁을 먹으려 '의포인트'를 사용했다. 이렇게 '의포인트'를 사용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인간 생존 욕구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지가 강할수록 의로운 행동을 거침없이 하리라. 그러나, 인간 본능이 의로운 행동과 비교되어 우위를 논하는 상황까지 나 자신을 몰고 가는 일은 어쩌면 의로운 모습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⑥ '의재단'은 학생들이 남긴 모든 기록을 완벽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 기록은 영구 보존되어 학생이 진학하거나 취업하거나 사업하거나 어떤 경우에든 그 학생이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기록은 국가나 '의재단'에서 조회해서는 안 된다. 학생에게만 공개하고, 조회한 그 모든 기록을 남겨두어야 한다. 다른 곳에 내 기록물을 공개하는 경우, 반드시 본인이 직접 제공해야 한다.

⑦ PAY 운영업체는 학생이 사용하는 '의포인트'를 법정화폐 가치를 가진 지불수단으로 교환해 준다. 운영업체는 학생이 사용한 '의포인트'는 교육단체나 재단이 공탁한 '의기금'에서 충당 받으면 된다. 훗날, ‘의포인트’니 ‘PAY’니 하는 용어는 새 가상자산이나 NFT 및 그 파생상품으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위 나열한 것은 ‘의’라는 말 대신 ‘신뢰’, ‘실력’, ‘희망’, ‘사랑’, ‘평등’ 등과 같은 관념으로 바꾸어 사용해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리라.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어떻게 컴퓨터 데이터로 만들겠느냐다. 물론 불가능에 가까울 거다. 두 발로 서서 수백만 년 문명을 일궈온 사람처럼, 나 또한 ‘마음보다 몸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챙기는데 온 힘을 기울여 살았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그동안 누군가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며, 조금은 ‘마음 유전자’를 남겨준 고마운 그들이 있었으니, 문명은 더 발전할 것 같다. 

여기 이렇게나마 정리하고 싶은 것은, 지금부터라도 다보스포럼이나 빌드버그회의 같은 끼리끼리 뭐든 비밀이라며 참여하는 사람들, 그들을 향해 말하고 싶어서다. 이것도 의로운 행동이라고 우기고 싶은 내 욕심에서다. 뭐 그들이나 나나, 욕심부리며 사는 건 같겠으나, 이런 욕심조차 없으면, 내 남은 삶이 더 미지근해질 것 같아 더욱 그렇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22C 새 문명 코드는 ‘의’라고 욕심을 부리며 외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생겨날지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의로운 사람이 되려 노력하기에, 참으로 영광스러운 사람이 맞을 것이다. 그래, 분명 행복한 사람! 

info@blockchai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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