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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의 동화 ‘잠잠이와 쿨쿨이’가 끝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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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의 동화 ‘잠잠이와 쿨쿨이’가 끝나지 않는 이유
  • 블록체인투데이
  • 승인 2022.05.2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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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 밈비 이사 / 시인

꿈! 꿈은 최고 상상력의 하나라 불리기도 하고, 가끔은 우리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유토피아를 향하기도 하며, 또 나 자신의 행복함을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도, 어릴 때 꾸었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 설정했던 작은 목표를 달성한 순간, 그 순간의 그 아름다움에 취한 적이 있었다. 힘들 때마다, 한 번은 이루었던 나의 그때를 떠올리며, 새로운 나만의 꿈을 다시 만들려 했던 것 같다. 무한대 경우의 수가 펼쳐지는 세상, 그 세상이 어떻게 펼쳐졌으면 좋을지 하며, 나만의 새 꿈을 계속 만들었으리라.

아마, 딸들이 초등학생이 되기 전의 이야기일 거다. 가끔 뜸을 들여가며, 옛날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들려주려 했었다. 잠들기 전에 나쁜 일은 잊고, 아름다움만 떠올리며 잠들었으면 해서, 또 잠속에서도 예쁜 꿈을 꾸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거다. 처음엔 잠잠이와 쿨쿨이라는 두 주인공이 잠을 자다 꿈속에서 서로 친구 집을 오가는 단순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옛날에 잠잠이와 쿨쿨이가 살았어요. 어느 날 잠잠이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어요. 꿈속에서 잠잠이가 쿨쿨이네 집에 놀러 갔어요. 그런데, 쿨쿨이를 보니까 쿨쿨이가 잠을 자고 있었어요. 쿨쿨이도 잠을 자며 꿈을 꾸었어요. 쿨쿨이는 꿈속에서 잠잠이네 집에 놀러 갔어요. 그런데 잠잠이네 집에 가서 보니까 잠잠이가 잠을 자고 있었어요…” (후략)

내가 쿨쿨이인지 딸들이 잠잠이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즈음, 이미 아이들은 잠들어 있곤 했다. 며칠 건너 잠잠이와 쿨쿨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그런데, 몇 번은 깔깔대다가 자고는 했는데, 웬걸! 그 횟수가 늘어나자, 점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이들이 보채는 것이었다. 

“에! 또 그 얘기?” 
“그거 말고. 다른 이야기 해줘. 응?”

하긴 잠잠이와 쿨쿨이가 꿈속에서 서로 집을 오가며, 잠든 것만 보는 것으로 끝나다 보니 재미가 없어진 모양이다. 고민 끝에 서로 오갈 때마다 오가는 곳에서 누구와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을 넣기 시작했다. 

“쿨쿨이가 꿈속에서 잠잠이네 집에 놀러 가며 개울을 건너는데, 거기서 신데렐라가 물장난을 치고 있었어요. 쿨쿨이가 말했어요. ‘너도 심심하지? 나하고 잠잠이네 집에 놀러 갈래?’ 큰 눈을 깜빡이며 신데렐라가 물었어요. ‘거기 가면 뭐 재밌는 거 있어?’ 쿨쿨이는 고개를 꺄웃거리며, ‘아직 몰라, 가봐야 알아.’라고 대답했어요.”

나는 이때 딸들에게 물었다. 
“쿨쿨이와 신데렐라는 잠잠이네 집에 가서 보니, 잠잠이가 뭐 하고 있게?”
“으응, 잠잠이가 맛동산을 먹고 있었어.”라고 큰딸이 눈을 반짝이며 먼저 대답하는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왜, 그걸 먹고 있었는데?” 
“응,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히히.” 

이전 이야기는 잠잠이와 쿨쿨이가 서로 오가는 이야기, 가서 보니 잠이 들었다는 이야기, 잠속에서 꿈을 꾸었는데 또 서로 집에 놀러 가는 이야기 등등이 되풀이되었었다. 그런데, 집에 놀러 가며 누굴 만났다는 이야기가 들어가자, 웬걸, 아이들이 잠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물었다. 
“쿨쿨이가 신데렐라를 데려오면, 잠잠이가 신데렐라와 함께 맛동산을 먹고 싶어서 맛동산을 먹고 있었을까?” 
큰딸은 깔깔거리며, 
“맞아, 아빠 잘 맞추네!” 
작은딸이 질세라 끼어들었다. 
“쿨쿨이에게 나누어 주려고 그랬던 거야!”
아뿔싸, 이쯤이면, 잠드는 일은 물 건너간 듯. 나는 잠잠이와 쿨쿨이보다 더 긴 딸들의 눈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말했다. 
“맞아, 쿨쿨이와 신데렐라와 함께 먹으려고 맛동산 먹고 있었던 거네?” 
큰딸은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다 함께 먹으려고 했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집에 일찍 퇴근해 들어간 날이면, 어김없이 딸들은 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곤 했다. 나는 ‘잠잠이와 쿨쿨이’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전 이야기를 이어가야 했다. 

“응, 그러니까, 쿨쿨이가 신데렐라를 데리고 잠잠이네 집에 가서, 맛동산을 맛있게 먹으며 놀았어. 놀 때, 공기놀이도 했단다. 신데렐라는 공기를 할 줄 몰라, 잠잠이가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어. 신데렐라는 금방 배워서 이길 때도 있었어. 공기놀이하다가 보니, 잠잠이가 잠들어 버렸어. 그러니까 쿨쿨이도 신데렐라도 스르르 사라졌어. 그들도 잠들었던 거야.” 

“그런데 있지, 공기놀이하다가 잠잠이는 잠들었는데, 잠속에서 또 꿈을 꾸었단다. 꿈속에서 잠잠이는 쿨쿨이네 집에 놀러 갔어. 놀러 가는데, 신호등에서 콩쥐를 만났어. 잠잠이는 콩쥐를 데리고 쿨쿨이네 집에 갔어. 쿨쿨이는 비행기종이접기를 하고 있었어. 콩쥐는 쿨쿨이에게 물었어. 그 비행기로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콩쥐가 묻자, 쿨쿨이는 웃으며 말했어. 응, 너하고 잠잠이 하고 알프스 구경 가려고. 잠잠이는 콩쥐 손을 잡고 말했어. 야 신나겠다!”

딸들은 웃다가 잠드는지, 아니면 잠속에서 웃는 건지 알지 못하지만, 이미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딸들이 심심하지 않고, 잠에 깊이 빠져드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서 해주었다. 그런데, 이게 무척 어려운 것이었다. 이야기를 뭐 미리 적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줄거리를 이야기하다가 줄거리 끝에 새 이야기를 만들어 넣어야 하는 일이라니! 

앞뒤를 섞어도, 그 사이마다 다른 이야기를 넣어도,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되곤 했다. 물론 새 이야기의 시작은, 다시 잠잠이든 쿨쿨이든 누가 졸렸고, 그래서 잠들었고, 또 잠속에서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잠잠이든 쿨쿨이든 서로 또 놀러 갔고, 가면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고 하는 등등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저 가상세계의 모르는, 처음 경험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함에 있었다. 모든 문제는 내가 만들게 되고, 내가 풀어야 하는 인생사처럼.

다른 새 이야기 추가하기를 몇 번. 이렇게 몇 날이 지나자, 줄거리 자체를 기억해 먼저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부담될 수밖에. 딸들은 눈치챘는지, 아니면, 그건 다 아니까 어떨 땐 그냥 건너뛰란다. 그러면서 딸들은 끝 장면을 먼저 이야기해 준다. 다음 이야기는 어떤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어떤 땐, 큰딸이 먼저, 아니면 작은딸은 먼저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딸이 물으면 대답해 주고, 나도 또 묻기도 하고. 이렇게 딸들과 주고받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젠 내가 먼저 조는 것이었다.

이렇게 잠잠이와 쿨쿨이는 집을 오가며 만난 주인공들이 많았다. 신데렐라며 홍길동, 콩쥐, 흥부, 백설공주, 도깨비, 호랑이 등등. 그렇게 한해 한해 지나자,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나 순서들이 뒤죽박죽될 수밖에. 딸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잠잠이와 쿨쿨이 이야기해 줄까?’ 하고 물으면, 딸들은 뭐가 바쁜지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이야기 이어나가기가 귀찮은지, 아니면 새 이야기 만들기가 힘든 건지, 또 아니면, 무엇인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주변 환경 적응이 더 재미있는 건지, 등등의 이유로 그냥 슬쩍 웃으며 넘기는 것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본다. 조그만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들렸던 노래나 뉴스 혹은 만담 같은 것들을 들으며, 조금씩 넓어 보이는 세상이라니, 그 신기롭던 새롭게 보이는 것들 구경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호롱불에 머리카락 그을리며 읽은 어린이신문 만화 속 주인공은 세계 최고의 영웅이었다. 손톱만한 모형 플라스틱 조가리 자동차를 손가락으로 놀리며 자동차 경주 소리를 내던 꿈 철철 넘치던 때였다. 

과연 내 어린 시절의 유전자가 이젠 디지털 전환시대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딸들에게 ‘잠잠이와 쿨쿨이’ 이야기를 하던 때가 이제 30년이 내일 모래다. 한 시대가 아는 듯 모르는 듯 변한 것. 그 사이에 인터넷이 생활화되었고, 블록체인 이론이 나타났으며, 비트코인과 디지털화폐가 등장했고, 바야흐로 현실 세계와 같은 활동이 이루어지는 메타버스라는 가상세계가 예고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잠잠이와 쿨쿨이’라는 가상동화 같은 꿈 이야기가 서서히 현실 이야기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멋진 ‘생존의 도구’임은 분명하다. 태초의 유전자를 통해 전달되어 온 영원히 존재하는 도구일 듯. 설상가상, 앞선 몇몇 꿈은 22세기를 건너는 첨단문명 시대에서는 현실과 가상의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또 아닐까. 그 다리를 순간마다 오가는 일이 일어나려면, 지금은 기적이겠지만, 실제 이 디지털트윈을 자유로이 경험하려면, 해리 포터가 기차역에서 마법의 학교 세계로 여행 짐가방을 밀치며 ‘일순간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기적 같은 일이 생겨야 하리라. 

그 누구에게 먼저 그 기적은 일어나겠지만, 현재는 가상 게임의 연장선에서 내 아바타를 통해 내 의사를 표시하고, 현실 세계에서 실행에 옮겨 보는 수준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통신 시대를 지나 바이오컴퓨터 시대를 거치면서 언젠가는, 현실과 가상의 세계, 그 사이를 실제 순간 이동을 일으키며, 안방과 건넌방을 심심하면 오락가락 다니듯, 양방향으로 오가는 일이 벌어질 것! 이 세계가 어떠니, 또 저 세계 어떠니 하며, 또 편을 갈라 대립하겠지만. 

혹시, 내가 그 가상 시대에 환생해 산다면, 다음 ‘디지털트윈’의 어느 다리를 어슬렁거리며, 오늘은 어떤 꿈을 꿀까 멈칫 멈칫거릴지 모른다. 지금도 그러하거니와, 지금과 지금의 옆 세상을 순간순간 오가는 다리에서, 비몽사몽, 이번엔 어디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며, 나만의 주문을 외우느라 웃고 울며 하면서 말이다. 잠깐 꿈에 든 그 순간도, ‘혹여 그 누군가에 의해 살아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고민’을 하는 꿈속의 그 꿈을 깨면서 말이다. 

다리 걷는 꿈을 꾸었다
다행이다 살아있다
사람을 만났다
이번엔
스마트폰 같은 것을 
입에서 꺼내는 사람이었다

그처럼 모두 그랬다
나도 꺼내려 입을 벌렸다
그리고 우린 앞만 보며
뚝뚝 모른 체했다
뭐 살고 죽는 일인 듯
슥, 슥슥 서로 지나쳤다 

가끔 뒤도 돌아보았다 
그땐 그래그래 
하얀 꿈을 꾸기도 했다
그래도 마찬가지
스마트폰 같은 녀석
어디 둘까 망설였다
어제도 내일인가 하며
걷는지 섰는지 뺨 만지며

하, 물 먹고 싶어
그냥 입 쩝쩝거리는데
뭐가 또 내게 왔다 
버릇처럼 덥석 만지려
두 손을 내밀었다 
또 만지지 못했다
괜히 실웃음이 났다
웃다 보니 저 세상이
쓰윽 멈추는 것이었다 

어쩔꼬 꿈이 깬다
자꾸 목이 말라온다
안돼 녀석이 없어도
다른 꿈을 꿔야 해  
새로 웃는 꿈을 꿔야 해
그런데, 어쩌자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며
꿈틀, 꿈틀거리다가
섬뜩, 꿈이 멈추는 
그 헛꿈만 꾸는 것이냐

(졸시, 디지털트윈 브릿지 Digital twin Bridge)

물론 우리는, 100년 혹은 1000년이 지난다손, 그래도 우리는 기억에 남는 꿈이 몇 개 가지고 살아가리라. 어쩌면, 그 꿈이란 저마다 이루어지길 바라는 ‘생명의 충동’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이 애완동물 기르듯, 먼 미래에서는 ‘갑이라는 몇 사람들이 을이라는 많은 사람을 기르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해본다. 이도 쓸데없는 걱정일 수 있겠지만, 그 많은 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 새로운 꿈을 꾸고 싶지만, ‘꿈이 멈추는 헛된 개꿈만 꾸며 하루하루 기계와 함께 지내는 것’은 아닐는지 하는 우려다. 

너무 쓸데없는 우려를 부풀렸는지 모른다. 내 생애에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 아니 일어난다 해도, 내가 살아왔던 그대로 살아가며 나는 끝까지 행복할 테니. 그래, 세상사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한다는 욕심을 나 먼저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도 괜한 걱정이겠지만, 나 스스로 욕심의 싹을 자르기 위해 확인해 보려는 것일 뿐. 그랬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든, 새로운 꿈을 계속 꾸고 싶은 것. 바라건대, 이 작은 꿈일망정, 헛꿈이 아닌 상식으로 남길 바랄 뿐. 상식 이상의 욕심이 아니길 바랄 뿐. 

그동안 짧은 삶을 살아오며, 분명 목표를 이룬다는 꿈이 있었기에 그때마다 나만의 행복감을 조금이나마 맛보았었다. 남은 더 짧은 삶도 새로 만드는 목표를 가지고, 이것만은 내 것이라며 내가 만든 행복감을 실컷 느끼리라. 누가 갑이 되든, 갑이 되어야 더 행복하든 말든, 나는 나만의 모습과 그 행복감을 유지하려,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갑이든 을이든 현실이든 가상세계든, 세상이 어떻게 발전하든 상관없이, 내가 아는 분들과 알콩달콩 지내며 생사고락을 나누는 지금만의 짤막짤막한 내 목표가 나에겐 최상의 행복임은 분명하다. 

어쩌면, 지금, 이 행복도 내가 억지춘향격으로 느끼려 한 것은 아닐까 하여 숨 몇 번 고쳐 쉬며 자문을 해본다. 잠잠이와 쿨쿨이 이야기가 끝이 없는 것처럼, 행복이란 끝이 없는 것일 텐데, 지금이라도 조금 행복을 앞당겨 맛보려 하는 것일지 모른다. 언제까지 나는 ‘디지털트윈 시대에는 무엇을 하며 놀까?’ 하는 걱정을 더 하지 않기 위함이다. 혹여, 잠잠이와 쿨쿨이의 다음 이야기가 무엇일까 하며, 삼삼오오 그 다음 이야기를 나누는 그때마다,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 이땐, 내가 메타버스 그 세상에 있어도 상관이 없을 듯.

가끔, 뒷짐 쥐고 멍하니 하늘 볼 적, 가상세계가 저 하늘인가 하며, 중얼거리는 사람이 옷깃을 스치면, 잠잠이와 쿨쿨이 이야기를 함께 이어가고 싶어진다. ‘서로 잠잠이가 되었다가 쿨쿨이가 되어보는 것이 어떠냐?’라며, ‘너는 잠잠이가 더 좋으냐, 쿨쿨이가 좋으냐?’고, 묻고 또 묻고 싶어진다. 그렇게라도 물으면서, 나는 지금도, 딸들이 어렸을 때, 그때 나처럼, 내 예뻤던 행복을 계속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다. 

허, 그것참! 나는 분명히 행복한 적이 셀 수 없을 만큼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겐 뭔가 아직 채워지지 않은 뭐가 있는 듯하다. 이것도, 과연 꿈일까, 또 욕심일까? 꿈은 마음이고 욕심은 몸 같기도 한데, 그러니 다 놓칠 수 없는데…. 그런가, 그런가? 그래, 지금은 꿈도 욕심이다, 맞다. 이렇게라도, 끝내 나는, 내 욕심을 채워야 사는가? 이것이, 지금도 내 잠잠이와 쿨쿨이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이유인가! 하, 그것참! 

info@blockchai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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