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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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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 블록체인투데이
  • 승인 2021.04.1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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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연구센터 김형중 센터장

현대미술의 3대 거장으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가 꼽힌다는 글을 위키피디아에서 봤다. 그런데 뒤샹의 '샘'(Fountain),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Les Demoiseilles d'Avignon)',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La femme au chapeau)'은 당대에 심한 혹평을 받았다. 지금은 이 작품들이 미술사의 한 획은 그은 작품들로 평가되고 있다. 사람들의 평가는 이렇다.

이들의 작품은 무엇이 예술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뒤샹은 미술재료의 한계를 타파하려고 시장에서 구한 남성용 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했다. 피카소는 오브제의 형태, 원근법, 시점을 비틀어 그림을 그렸다. 마티스는 오브제의 형태와 색체를 분리시켜 사람들의 시선을 색채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르네상스 이후 정립된 정형화된 양식을 송두리째 뒤흔들면서 예술의 지평을 넓혔다.

6달러의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작품을 제출할 수 있어 1917년 한 전시회에 뒤샹이 문제의 변기를 출품했다. 이 작품은 정식으로 접수되었지만 실제로는 전시되지 못했다. 작품은 사진으로만 남았고 원작은 사라졌다. “자기 자리에 있으면 유용한 물건이지만 전시장은 제 자리가 아니며 미술작품으로 볼 근거가 없다”는 평을 받았다. 훗날 뒤샹의 승락을 받아 16개의 복제품이 만들어졌다.

복제품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64년에 8개의 복제품이 만들어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1999년 뉴욕의 소더비 경매에서 1,762,500달러에 팔렸다. 이 작품을 산 사업가 디미트리스 다스칼로포울소스(Dimitris Daskalopoulos)는 '샘'이 “현대예술의 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표는 영국령 가이아나에서 1856년에 발행한 것으로 가격이 120억 원에 달한다. 가장 비싼 시계는 파텍필립(Patek Pilippe) 손목시계인데 362억 원에 팔렸다. 1794년에 미국에서 발행된 은화의 가격은 93억 원이다. 저 가격이 적정한 것인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그 가격에 산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이런 게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들이다.

2009년 1월 비트코인이 처음 채굴되었다.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비트코인을 만들었다는데 정작 그가 누구인지 알려진 게 없다. 비트코인 가격이 6만달러를 넘자 또 이게 거품인지 아닌지 논란이 재연되었다.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비트코인이 이룬 기술적 개가이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데이터에 불과해서 CTRL-C, CTRL-V로 얼마든지 복제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화폐인데 불법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했다. 그래서 화폐 역사에서 비트코인은 가장 혁신적인 발명이다. 사토시 나카모토야말로 인류 역사를 바꾼 가장 위대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손색이 없다. 다만, 비트코인 가격이 올라가면 덩달아 전송수수료도 올라 “가치교환의 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되고 “가치저장의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강화된다. 즉, 비트코인은 화폐보다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비트코인은 이미 중요한 자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었다. 어던 자료에서는 금의 시가총액이 10조 달러라고 한다. 지금까지 채굴된 금의 양이 19만 톤이다. 금 1톤의 가격이 약 5500만달러라서 이 둘을 곱하면 대략 1조 달러에 달한다. 이게 실제 시장에서의 금의 가치 총량이라고 한다면 비트코인의 위상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여기는 투자자도 있지만 소장품을 모으는 수집가들도 있다. 전자는 가격이 내려가면 대부분 시장을 떠나지만 후자는 가격과 무관하게 시장을 지킨다. 당분간 코인 가격이 형편 없이 내려갈 것 같지는 않다. 비트코인은 암호화폐를 세상에 널리 알린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 같은 존재이다.

2021년 들어 세상을 바꾼 중요한 인물이 또 하나 있다. 그는 비플(Beeple)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마이크 윈켈만(Mike Winkelmann)이다. 그는 디지털 아티스트인데 그의 작품을 블록체인과 연결했다. 3월 11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 '나날들: 최초의 5000일'(Everydays: The Fisrt 5000 Days)이 무려 69,346,250달러에 팔렸다. 그의 작품은 JPEG 파일이었으며 용량은 319 MB였다. 

그보다 며칠 전인 2월 25일에도 비플의 '교차로'(Crossroads)라는 작품이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에서 6,600, 000달러에 팔렸다. 디지털 아트 작품이 블록체인에 기록되었다고 해서 저작권이 보호되는 건 아니다. 원본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확인될 뿐이다. 원본이 저장된 곳의 주소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것은 가능하다.

비플의 디지털 아트가 블록체인과 연계되어 고가에 팔리자 디지털 아트 작가들이 흥분했다. 생소한 블록체인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치고 들어와 디지털 화폐라는 촉매제와 결합한 디지털 아트 작품들이 고가로 팔렸다. 그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원본, 진본임을 증명해주는 블록체인 기술에 주목했다. 그리고 디지털 아트가 유통되는 새로운 채널로서의 블록체인을 환영했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거품으로 치부하며 작품 가격이 거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 있다. 아날로그 네이티브들은 노동, 소유 같은 가치를 중시했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정보, 공유 같은 가치를 중시한다. 아날로그 네이티브들은 만져지는 것, 소유할 수 있는 것에 투자했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만져지지 않는 것, 공유할 수 있는 것에 투자한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져지지 않는 디지털 화폐를 만들었고 비플은 디지털 아트를 블록체인에 기록해서 공유 환경을 실험했다. 디지털 시대의 돌풍이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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