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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M형,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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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M형,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겠어요?
  • 블록체인투데이
  • 승인 2022.09.0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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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 밈비 이사 / 시인

◆컴퓨터 사용이 내게 준 영향
M형, 안녕하세요? 저는 컴퓨터소프트웨어개발 국책연구소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면서, 저 좋아 일기 쓰기를 낙으로 삼은 덕에, 지금도 시·수필·칼럼 등 쓰기를 남다른 낙으로 삼고 있는 직장 은퇴자요 같은 문인이기도 합니다. 첫 직장부터 컴퓨터를 끼고 일을 했으니, 컴퓨터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검색하거나 갖가지 문서를 작성해 오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상인 듯합니다.

지난 40년 전부터, 저는 글을 쓸 때마다 다양한 기록 매체에 기록하며 지내왔습니다. 처음에는 대형컴퓨터를 사용했기에 통돌이세탁기처럼 생긴 하드디스크나 영화필름처럼 생긴 자기테이프에 글을 저장했습니다. 1980년 중반을 거치면서 컴퓨터 내장 하드디스크를 주 기억매체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책상에서 종이가 급속히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보안과 편리성을 위한 이동식 기억매체로는 8인치 플로피디스크를 1년 정도 사용했고, 5.25인치 3년, 그 후 3.5인치 5년 이상을 쓰면서 CD도 함께 쓰는 등 그 매체의 크기가 작아지더니, 급기야 21세기를 지나면서, USB와 플래시메모리 시대로 접어듭니다. 물론 통신망을 통해 개인용으로는 무한대에 가까운 클라우드 컴퓨터를 기록 매체로 사용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요. 물론 스마트폰도 글을 쓰고 저장하는 기록 매체이기도 하지만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경쟁하듯 컴퓨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없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 맞아. 나는 컴퓨터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느끼게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컴퓨터가 더 발달하면 우리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고민이 지금 이 편지를 쓰게 만든 것 같습니다. 부디 조금이나마 공감해주시길 간청하며 이 편지를 잇습니다. 

◆갑자기 불어닥치는 블록체인 세상 
M형, 그 고민은 바로, 최근의 인공지능, 블록체인, DeFi, NFT, Metaverse, Digital Twin 등 새로운 용어와 함께 컴퓨터 세계에 펼쳐지는 젋은 변화를 자주 접하면서 더 커지고 있답니다. 물론, 너나 따질 것 없이, 갑자기 불어닥친 세상 시류를 이용해 먼저 그 변화의 선점을 위해 좌충우돌 몰려다니는 현상에 대한 우려는 그 고민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세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지만, 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기업인이나 자본가가 어떻게 성공했느니 얼마를 벌었느니 하는 뉴스를 대할 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때마다, 뭐랄까, 새로운 기회를 저만 자꾸 놓치는 것 같고, 그래서 예술인 누군가라도 뭐 좋은 사례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자주 들었던 것이지요. 

특히, 최근 디지털자산, 즉 속칭 암호화폐가 수면 위로 오르면서, 세계 각국은 동시다발적인 화폐개혁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요. 이미, 중국은 종이돈이나 동전을 더 발행하지 않고, 그 대신 법정전자화폐를 이번 북경올림픽을 기회로 발행하고 유통하고 있으니까요. 나아가, 벌써 일부 작은 국가에서는 비트코인을 자국의 법정화폐로 사용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컴퓨터가 만든 전자화폐의 신냉전시대
M형, 세계는 하루가 멀다며 컴퓨터 신기술이 등장하고, 이를 현실로 수용하기 위한 시도를 누가 먼저 하느냐, 그래서 생활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다국적 거대 자본가가 먼저 되느냐 하는 치열한 경제 전쟁에 돌입해 있습니다. 어쩌면, 지구 땅덩어리를 두고 서로 차지하려던 100년 전 제국주의 시대처럼, 세계는 땅과 하늘을 두고 독점하려는 디지털 패권주의 시대의 극치를 예고하고 있는 것 또한 미루어 짐작하실 겁니다.

이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세상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컴퓨터 문명의 특이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21세기 몇 년 전후부터 일기 시작한 인터넷 붐은 생활 방식을 새로운 단계로 상승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IMF 사태와 세계의 인터넷닷컴 거품 시대를 통과하는 동안 세계에는 몇몇 공룡기업이 탄생했지요.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과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필두로 페이스북의 메타, 구글, 아마존,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텐센트, 알리바바, 링크드인, 스타링크 등은 벌써 모두 다국적기업이 되었지요. 국내에선 네이버나 카카오 등이 IT 선진국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최근, 세계는 ‘신냉전시대’를 향해 치닫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인즉, 아마도 세계 대부분 국가가 디지털전자화폐(CDBC)를 앞다투어 발행해 화폐개혁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생긴 듯합니다. 이는 과거 이데올로기 대립이 아닌, 세계 자본 선점을 향한, 100년마다 바뀐다는 세계 기축통화의 패권 지키기와 그 밥그릇 나누어 갖기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불씨를 지피고 있는 암호화폐는, 새로운 100년을 향한, 가히 보이지 않는 생존 보존형 디지털 핵폭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문학계 밥그릇이 줄어드는 이유
설상가상, 21c에 들어서면서,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정점으로 통화량이 급속히 늘었습니다. 그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는 그만큼 오르고 또 오르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우리 문인의 생활이 그만큼 열악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겠지요. 열악해진다는 건, 문학계가 좋아지고 나빠진다는 의미는 물론 아닙니다만, 문인의 증가가 더디어지고 감소 될 수도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를 미시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문학계 파이는 그대로 있기에, 통화량이 늘어난 만큼 문학계 파이는 상대적으로 축소된 것을 뜻합니다. 즉, 기존 문학계의 경제적 활동 무대가 축소되고, 이러한 축소의 반복은 결국 문인을 문학계와 상관없는 변방으로 멀어지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편, 장기적 측면으로 보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결국 문학계는 그나마 자본의 변방에서조차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매우 천천히 변화하는 문학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기에, 당장은 줄어드는 주머니 크기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먼 산 멍하니 쳐다보듯, 괜한 안타까움만 커집니다.

그렇습니다. 변명할 필요는 없겠으나, 문학계는 과학이 발달할 수록 그 경제적 자립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펼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일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말이지요. 특히 인터넷 매체가 발달할수록 쓰고 읽어야 하는 문학계는 급속히 변하는 컴퓨터 문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긴 글을 읽어 뜻을 주고받기보다, 짧은 문구나 짧은 동영상이 더 많아지는 이유겠지요.

◆100년 전 문학에서 다가올 100년을 읽는다
M형, 저는 나이 숫자가 하나씩 늘수록, 별이 조금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지구가 그 만큼 작아진다고나 할까요? 땅 밟는 일도 즐거워지고요. 또, 점점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구분도 엷어지고, 100년이란 기간도 뭐 그리 멀리 느껴지지 않기도 해요. 그래서, 100년을 10번 거듭 거슬러 올라가, 아, 역사가 별거 아니네 하며 이렇듯 건방진 소릴 내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인종 혹은 문화 또 그 뭐도 비슷해 보인다니까요. 더욱이, 로봇이 사람처럼 말을 걸어오고 대답할 때 즈음, 세월이란 모두 고만고만하지 않겠어요. 어쩌면, 먼 훗날, 100년이란 그저 숫자일 거라고 우겨도 될 정도지요.

최근, 영어영문학회(ELLAK)는 신촌문화발전소에서 ‘과거에서 온 오늘의 편지’라는 강연회를 열었는데, 100년 전 문학에서 다가올 100년을 읽는다는 명제를 다루었지요. 여기서 문학을 중심으로 과학의 경계를 함께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영문학과 이동신 교수는 ‘인공지능의 외로움’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었습니다. 저는 이 강연을 유튜브의 동영상으로 시청하였습니다. 세계 문학지성이 과학기술계에 미치는 상관관계 이해의 도움이 되기에,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였습니다. 

1942년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공상 과학 소설 <런어라운드(Runaround)>에서 언급된 다음 로봇의 3원칙은 지금도 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기준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둘째,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 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로봇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한다. 40년이 더 지나 그는 0번째 법칙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가하거나,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도 추가합니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기념비적 작품인 <뉴로맨서>를 발표하는데, 인간이 육체가 없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지능만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상상은 메타버스의 세계를 예고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1949년, 제프리 제퍼슨은 <The Mind of Mechanical Man>이라는 작품에서 기계가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감정을 따라 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지능과 비교할 수 없다는 상상을 합니다. 그는 아시모프의 아이로봇 소설에 나온 말을 인용합니다. 그 어떤 기계도 자신의 성공에 기쁨을 느끼고, 자신의 가치가 떨어졌을 때 슬픔을 느끼고, 칭찬에 기분이 좋아지고, 실수에 비참해하고, 이성에 매력을 느끼고,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 화가 나거나 절망하지 못하기에 기계는 그저 기계일 거라 단언합니다. 기계가 지능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우려한 문학적 상상이라 보이는 대목입니다.

컴퓨터지능을 처음 언급했던 엘런 튜링(Alan Turing)은 1950년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에서 백지와 같은 아이 지능의 기계 상태에서 그 기계를 가르치는 경험과 얼마나 배워가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과 기계가 내놓은 답을 구분할 수 없다면, 즉, 답에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다면, 인간과 기계의 두뇌는 무엇이 다른 걸까요. 인간만 이성적/감성적 지능을 모두 가진 것이 아닌, 기계 또한 유사하게 흉내를 낼 수 있다면, 그렇습니다, 인간과 기계는 대등해질 수도 있겠지요. 합리적이냐 감성적이냐 하는 구분을 무시하려 했던, 이러한 그의 ‘튜링테스트’는 문학인의 상상이 얼마나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지 엿볼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1995년도 발표된 리처드 파워스(Richard Powers)의 자전소설 <갈라테아 2.2>를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최근 인공지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설이 제공한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공신경망의 다중 패턴에 대량의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는 기법이지요. 문학과 과학의 상상력은 백지장처럼 양면이란 차이밖에 없겠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과학과는 달리, 상상만으로 실험을 거치는 문학이 먼저 그 개념을 제시하는 사례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계속 이동신 교수는 지적합니다. 인공지능이 외롭다고 말한다면, 많은 사람은 이구동성 기계가 무슨 외로움이냐 하며 무시하리라는 기존 관념의 고착성에 대해 꼬집습니다. 무시하는 것이 아닌, 외로울 수도 있을 거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즉,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의 개념을 상상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또 다른 인간 정체성 확인의 한 요소로 인지해야 하리라는 것입니다.

강연 동영상을 들으며, 백 년 전 문학 작품에서 상상한 것들이 지금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새삼 느끼는 지금입니다. 다시 그 누군가 백 년 후에 일어날 상상을 하며 문학 작품을 쓰고 있겠지요. 그런데, 하필 저는 그때는 많은 문인이 지금보다 더 넉넉하게 존재해 있어야 한다고 상상하고 싶어집니다. 아니 그때는, 문인으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보다 더 부유한 문인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상상을 실컷 해보고 싶습니다. 뭐 지나친 욕심이 아니길 바라면서요. 

그럴까요? 문명이 더 발전할수록 문인이 지금보다 조금 부유해질까요?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하겠지요. 문인의 파이를 발전하는 문명 파이보다 그 비율을 더 높일 수 있다면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중년을 벌써 넘어선 저부터 먼저 고개를 수없이 끄덕이며, 문인이 경제 활동의 새로운 인식 전환과 그 방법 도출에 머뭇거리지 말아야 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메타버스 경계에 선 문인의 갈등
M형, 어쩌면 백 년 전에 예고된 것처럼, 이제 다시 백 년을 바라보며, 다양한 미래 먹거리를 대변하는 신생 용어나 사회 현상들이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고 있는 것을 느끼며 저는 작은 염원이 싹틔우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바로, 우리 한글 문학의 창작인들이 새로운 문명을 이끄는 인간 삶의 모습을 다른 누구보다 미리 직시하길 소원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무조건 컴퓨터와 문학은 원래 거리가 멀다며 등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문학의 날카로운 상상력이 새로운 변화를 넘어 세계인 삶을, 그 행복의 흐름을, 과감하게 선도하길 기원해 보는 것입니다. 

특히, 한글을 사용하는 문학인들이 메터버스 시대를 향한 새로운 창작 작품에 새 용어와 또 그 인물을 만들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많아져 서로 경쟁하듯, 봇물 터지듯, 한글로부터 먼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를 바라며, 수많은 노력이 응집되어 좋은 문학 작품으로 승화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섣불리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바랄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유로운 상상의 창작자에게 무척 조심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희망은 조금씩 여론이 형성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움을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중요하겠습니다. 참 어렵고 오래 걸리는 난제입니다.

이미 느끼고 계시겠지만, 오래된 그리고 매우 현실적인 난제는 역시 문학인이 새로운 소명감을 더 고양하도록 하는 일, 바로 난제를 말끔히 씻어낼 만한 경제적 대가의 제공입니다. 이러한 환경 조성은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정신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예술인이 존중받아야 할 역사적 기본 요소라 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디지털시대로 향할수록 예술인이라는 의미나 그 몫은 그대로인데, 새로 등장한 직업의 그늘에 계속 묻히는 듯해 보입니다. 더욱이, 점점 문인 숫자가 다른 예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 같아 문인으로서 자꾸 몸이 움츠러드는 갈등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시각적, 감각적인 현장감이 더 강한 예술 장르가 먼저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 때문이겠지요.

◆스마트시티인으로서의 문인 역할 상상
그렇다면, 문인이 컴퓨터문명 시대에서도 그 안정적 지위를 확보하는 대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①문인의 선각자적인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공급, ②문인의 사회적 인지도 제고를 위한 방안, ③문인의 재정적 안정에 필요한 재원 확보 방안 개발 등등이 그것들입니다. 이러한 필요성 연구는 사회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사례를 구체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M형께서도 위 사례 예시가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많으리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지금은 우선 먼저 떠오르는 대로 적어봅니다. 

첫째, 현재 문인의 디지털 생활에 대한 인식 전환 교육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문인이 먼저 컴퓨터 문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느껴야 하겠지요. 물론, 이 과정에서 문인은 미래 시점의 현재화를 위한 문학 작품을 발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작품 속에는 창작인으로서의 구체적인 상상력이 다양한 사업으로 승화될 아이템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 이를 바탕으로 문인의 상상력/통찰력이 현재 개발하려고 하는 시마트시티나 메타버스의 제반 사업의 프로젝트에 그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생소한 사업 내역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가 직접 사업계획서 작성 단계부터 참여하는 것이지요. 문학 작품의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승화될 때, 그 작가가 사업의 기획 시점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셋째, 현대 문명은 거의 컴퓨터플랫폼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업의 주요 일정마다 기획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감리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 확인 과정에서 사업의 윤리적 투명성이 제고됨으로써 문인 특유의 올곧은 가치관이 새 문명의 그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리라 생각합니다. 

넷째, 스마트시티 사업의 종료 시점에서 디지털화된 플랫폼의 시험구동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회를 통해 사업 완성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문인이 프로젝트 기획과 주요 개발 일정의 논리적이며 객관적인 점검을 수행한 후, 완성 직전의 플랫폼이 처음 예상했던 것 이상의 깔끔한 결과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테스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M형, 저는 문인이 새롭다는 컴퓨터문명의 모든 프로젝트에 처음 기획 단계에 참여하고, 기획했던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마무리 확인하는 역할을 통해 문인의 경제적 재원 확보가 이루어지리라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문인이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문인의 고유성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분들과의 교감을 이루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문인이 컴퓨터문명의 프로젝트 수행에 참여하는 기준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으로 제도화되길 희망해 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문인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참여 제도화를 통해 문인의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것은 아니냐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맞습니다. 문인이 현재 펼쳐지려고 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다양한 방법으로 적극 참여하길 희망해 봅니다. 물론, 그동안 인류가 구축해왔던 모든 프로젝트에 문인이 알게 모르게 참여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향후 펼쳐질 컴퓨터플랫폼 기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는 문인 참여가 꼭 법으로 명문화되길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기록의 힘이라고 합니다. 기록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논리적인 완성도를 높여 정리됨으로써 많은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기준이 만들어져 왔습니다. 바로 법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힘 위에 이제는 인류가 만들고 사용하는 컴퓨터의 힘이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즉, 인간에 의한 컴퓨터 그 기록이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적용되고 있는 바, 순간마다 생성되는 기록은 즉시 빅데이터로 누적되고, 이를 인공지능 결정체가 인류의 유토피아를 향한 구체적인 징검다리가 되리라는 기대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기대를 문인이 작성하는 프로젝트 관찰일지라는 기록으로부터 시작함과 동시에 완성되길 희망해 보는 것입니다. 난중일기라는 전쟁 참여 관찰일지가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것처럼, 프로젝트 책임자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 과정을 그때그때 잘 기록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대부분 회고록이라는 형태로 사후약방문처럼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문인이 기록한 실록처럼, 멋진 프로젝트 관찰일지를 문인이 작성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보입니다. 

◆블록체인 제도화의 문인단체 참여 기대
M형, 저의 일방적인 바램을 들으시기가 힘드실 듯합니다. 쉽게 현실화 될 내용이 시원스럽게 나열되면, 읽기가 마음 편하실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 또한 문인단체 활동에 미흡했던 문인일지라도, 문인이라는 자긍심을 만용이라도 부려가면서라도, 억지춘향격 무엇인가는 내뱉어야겠기에, 문맥 난항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 글을 잇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문인은, 문인이라는 이름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일부 전업 작가를 제외하고, 사회 모든 산업 분야마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또한, 이들 문인에 의해 인간 기록의 일부가 이어져 온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컴퓨터 문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 문인이 더 적극적이고 자신에 찬 문인의 번뜩이는 감성을 실시간 기록으로 남기는 법적 장치가 조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강조해 봅니다. 이는 정말 많은 문인이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동참했으면 하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저는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20여 년 전부터 국내 예술계에 큰 흐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당황스러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예술 산업에 대한 국내 관련 ‘법 개정 혹은 신설’ 초기에 참여해 그 어려운 과정을 겪은 바가 있었습니다. 2000년 초에 거론되기 시작했던 문화기본법이 2021년이 돼서야 개정을 반복하며 발효되었고, 이 시기와 맞물리면서, 2022년도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문화산업콘텐츠진흥법이 그 뒤를 이어 재정비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이라는 힘 위에, 최근 블록체인이라는 더 큰 힘과 더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M형께서도 최근 블록체인진흥과 관련된 제반 법안의 토론회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부적인 문구를 만들고 조율하는데 과연 예술인이 얼마나 포함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타깝지만, 비예술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 보입니다. 그만큼 메타버스라는 신세계 속에서 예술계가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이 축소될 수밖에 없겠지요. 설상가상, 그 신세계의 밥상에 문인이 잡을 숟가락이 있기나 한 것인지요? 이를 쓸데없는 걱정이라 일축하기에는 긁적이는 손이 머리에서 내려오질 않네요. 

저 좋아 문인이 되었듯, 그렇기에 저는 문인이 블록체인 세계의 주연을 맡았으면 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한글로 창작하는 문인 말입니다. 아니, 조연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다못해, 단역이나마 자주 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대, 문인이 지금보다 많아져, 메타버스로 가는 길에서 자주 마주쳤으면 좋겠습니다. 그 문인의 작품성이 어쩌냐 하는 일보다, 글을 읽고 쓰는 마음이면, 이 세상이든, 저 메타버스 세상이든, 지금보다 더 투명해지리라 확신하기에 그렇습니다. 

M형, 이즘에선, 문인이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문학 관련 민간단체가 적극 앞장을 서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저의 생각에 조금이나마 동의를 하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기존 언론이나 유명 유튜버가 나서기 전에, 먼저 민간단체 차원에서 ‘미래 사회의 현상과 그 새로운 변화 필요성’을 자주 언급해야 하리라 봅니다. 문인이 참여함으로써 더 컴퓨터 문명이 더 인간적인 멋을 가지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맞습니다. 어느 문명이든, 문인 역할론이 있었고, 또한 그러한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래 어떤 문명 시대라 하더라도, 문인의 역할은 변하지 않겠지만, 너무 빨리 변하는 시대와 호흡을 맞추어야 하기에 그 조직적인 대응이 더 효율적이라 보는 것입니다.

◆100년이 지나도 다시 하고 싶은 말
M형, 혹여, 평소 스마트시티가 다가오는 흐름을 즐기고 계셨다면, 아마도, ‘아마,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라고 혀를 차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혹여나 아직 컴퓨터 문화와는 거리를 두고 계시면, 부디 이 편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물론, 컴퓨터와 무관하게 지내왔고 몰라도 되는데 하신다면, 이 편지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재 맨 귀퉁이에라도 두시길 부탁드립니다. 혹시라도 다른 문인이 스마트시티 이야기를 꺼내실 때. 참고 자료가 되기를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SNS를 열 때마다, 컴퓨터문명의 특이점을 향하는 문장들이 눈을 크게 껌뻑이게 합니다. 그 새로움을 느껴보는 일, 그 즐거움이 매번 다르게 펼쳐지는 요즘입니다. 이 편지를 탈고하며 읽어보는 오늘처럼, 저는 언제라도 이 편지를 다시 읽으매, 매우 행복한 시간을 또 느낄 것입니다. 왜냐면, 10년 100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다 해도, 다시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M형,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겠어요?’라는. 

info@blockchai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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