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5:24 (화)

[칼럼] The Path of Democracy(민주주의의 길)
상태바
[칼럼] The Path of Democracy(민주주의의 길)
  • 블록체인투데이
  • 승인 2021.12.10 10: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욱태 블록웨어 대표

오랜만에 모교 캠퍼스를 찾았다. 인근에 위치한 협력사와의 미팅을 위해 오갈 때 생각을 정리하려 들르거나 교수로 재직 중인 동창과 차 한 잔 하려고 계절마다 한 번 이상씩은 일부러 찾기도 했는데, 이번은 참으로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캠퍼스 외곽 순환도로를 에두르는 벗나무들과 후문으로 올라오는 진입로 길섶의 개나리 꽃들이 흐드러지는 봄이거나, 캠퍼스의 짙푸르름이 기말고사 범위처럼 덮쳐오는 여름 어느 날, 혹은 호젓한 캠퍼스 눈밭을 홀로 거닐었던 겨울의 풍경… 모두 추억의 앨범 한 켠을 차지하고 있지만, 해발 6백미터가 넘는 산줄기를 흘러내려 끝자락 즈음에 자리한 교정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였다가 잎새들을 하나 둘 떨구고 처연히 겨울을 기다리는 숲 길을 거닐던 이즈음의 늦가을 캠퍼스를 특히 좋아했던 것 같다.

졸업 후 30여년을 지나도록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숲과 나무들이 교정을 산책하는 내내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 주었다. 하지만 교내 곳곳을 각종 신축 건물들로 빼곡하게 채우느라 여백의 공간미는 사라지고 추억 공간마저 꾸역꾸역 메꾸어 버린 고구마 같은 변화는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가 도서관 통로 앞 화단에 자리한 조그마한 판넬 앞에서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엉클어졌던 갑갑함이 풀어지는 작은 울림을 마주하게 되었다.

“The Path of Democracy” 그것은 필자의 학창시절이었던 80년대, 군사정권 독재와 탄압에 항거하다 생명을 바친 10여명의 학우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을 교정 곳곳에 세웠다는 안내 표지판이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박종철을 비롯하여 같은 시기에 함께 캠퍼스를 누비며 시대의 고민을 함께 했던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마지막 장면에서 멜 깁슨이 절규했던 “Freedom~!!”, 그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세대의 희생 덕분에 밀실 고문, 강제징집과 軍 의문사, 언론통제들을 철폐하고 정치와 사회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기념물로 새겨 두고 내내 후배들에게 알려 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춘들이 마주한 미친 집값과 고용 절벽, 이로 인한 경제력 격차와 기회 박탈의 심화는 영혼까지 끌어내어 맞서야만 하는 이 세대의 절망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최초의 국가로 칭송받는 대한민국의 무엇이 문제인가? 진영 갈등 · 젠더 갈등 · 세대 갈등과 같이 군사정권 시절에도 없던 이른바 ‘갈라치기 정책’, ‘분열의 어젠다’를 생산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군사정권의 척결로 정치 · 사회적으로는 民주화가 되었지만, 산업과 경제를 통제하는 법과 규제는 총칼 없는 억압, 官治 독재가 되어 분출하는 혁신 에너지와 성장 역량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치 사회의 民主化를 거슬러 경제 부문은 官主化로 역행하여 군복 벗은 독재와 억압을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官피아’라는 용어가 괜히 등장했을까? 그 중에서도 官治금융 폐해가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결국 목숨까지 바쳐가며 정치 민주화를 쟁취했던 X86 세대와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하향식 통제와 官 일방적인 규제 독재를 민주화, 투명화 하는 것이 영끌 세대에게는 path of democracy이다. 비트코인 논문이 주창한 것처럼 책임과 권한의 분권화 · 공유화를 통해 신뢰를 확보하고 산업 생태계와 스타트업 기업들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들을 실행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경제정책 민주화를 쟁취해야 하는 절실한 시점이다.

2022년 3월의 20대 대통령 선거에 임할 여야 주요 정당들의 후보가 선출되었다.  19대 선거 까지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가상자산 부문의 과세를 포함한 블록체인 관련 정책들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저 득표에 도움된다는 선거전의 유불리를 넘어, 국가 운영에 중요한 요소라고 인식한다는 확실한 반증이다. 이제 어느 후보도, 어떤 세력도 도도한 이 흐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도서관 앞 광장에서 어깨동무로 스크럼을 짜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처연히 불렀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노래가 문득 떠 올랐다. 일제 치하 망국의 한을 절규했던 이상화 시인의 슬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었을까 마는, 그 때 우리는 혹여나 봄이 영영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절망으로 아파했다. 

그렇지만 어쩌다 보니 ‘영끌 세대’가 되어 버린 지금의 청춘들에게 이런 절망을 경험하게 해서는 안된다. 실패는 자산이지만 강요된 절망은 단지 트라우마 일뿐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정치와 사회의 민주화를 관통했지만 이제 官治경제와 맞서야 하는 ‘라떼 세대’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만다는 것을 알고 믿었던 시인처럼, 음울한 이 겨울을 기필코 살아내어 새 봄 매화꽃처럼 꽃망울을 터뜨리기를 소망하자. 그리하여 지금의 청춘들이 영혼을 되찾을 수 있게 힘을 보태자.

돌아오는 새 봄에는 “The path of Democracy” 안내를 따라 그 길을 모두 다 걸어 보리라, 그 약속의 씨앗을 가슴에 묻고 돌아섰다.

info@blockchaintoday.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