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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확장] '블록체인'을 북한에서는 뭐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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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확장] '블록체인'을 북한에서는 뭐라고 할까?
  • 디지털뉴스팀
  • 승인 2020.12.0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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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현규 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 회장© 뉴스1


최현규 KISTI 책임연구원/통일과학기술연구협의회 회장 = 상당한 차이가 나는 남북의 전문용어

북한과의 교류가 상대적로 활발했던 시기인 2000년대 초반, 남북 공동 연구를 했던 한 교수는 북한 학자들의 논문을 읽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말로 할 때는 이해가 돼도 글로 보면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용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정보기술 관련 논문을 읽다가 '블로크련쇄'라는 말이 나오면 '이게 뭐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블록체인'이다. 블록은 블로크라고 하고, 연쇄는 체인을 우리말화한 것이며,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탓에 '련쇄'라고 쓰고 읽는다.

그 외에도 디지털 화폐를 '수자화페'(겹모음 아님), 클라우드 컴퓨팅을 '구름계산', 노드(NODE)를 '마디점', 웹서비스를 '웨브봉사', 오프라인을 '비직결', USB를 '만능직결모선'이라고 한다. 주의하지 않거나 사전 학습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학술 소통에도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가상화폐를 가상화페라고 하고, 인공지능, 가상현실, 4차 산업혁명 등 우리와 거의 똑같이 쓰는 용어도 상당하다. 사물인터넷을 사물인터네트라고 하는 건 이해에 무리가 없지만 전문용어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전자사전을 발간하는 북한

북한은 용어에 대해서도 관리 통제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어를 통한 자본주의의 침투를 우려한 측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학기술 영역에서는 주체과학을 우선하면서도 해외의 우수 기술 유입에 대해 열린 입장이다. 그래서 논문에서 영어식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이 늘어난 편이다. 와이파이를 아예 영어로 Wi-Fi라고 적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북한은 과학기술 또는 학술용어 등 전문용어사전이나 용어집을 발간해 왔다. 최근엔 주로 전자사전을 많이 만든다. 대표적인 것으로 북한의 국가국어사정위원회에서 만든 학술용어 전자사전인 '거울 2.0'이 있다. 90만 개 이상의 용어를 수록하고 있으며,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등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통합형 학습지원체계로 개발되었다고 발표한 '문명'이나 '천명 2.0'에 전자사전을 포함하고 있고, 거기에는 조선말대사전, 학술용어사전, 조선대백과사전, 다국어사전, 의학사전 등 수십 종의 사전이 수록돼 있다고 한다.

또 북한의 컴퓨터 운영체제인 붉은별 4.0을 기반으로 북한 내 국가망에 의학용어 보급시스템을 구축하거나 고려의학(한의학) 전자사전, 산림식물 전자사전 등을 개발하여 웹이나 휴대폰이나 태블릿(북한에서는 판형 컴퓨터라고 함)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 봐서 북한의 전문용어사전은 여러 영역과 분야에서 구성된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대형 스크린과 개인용 컴퓨터에 건축과 관련된 입체적 화면을 띄워놓고 관련된 토론을 하는 평양건축대학 구성원들의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ISO/ICE 정보기술용어를 기준으로 한 남북 용어 대비

최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수행한 남북의 정보통신기술용어 비교 조사 작업에서 ICT 분야의 기본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는 국제표준화기구의 정보기술 용어를 기준으로 남북의 전문용어를 비교했다.

남한의 정보기술용어는 TTA가 구축, 운영 중인 정보통신 용어사전에 수록된 용어를 기준으로 했다. 국립국어원의 오픈사전인 우리말샘도 같이 병행 활용했다. 북한의 용어는 조선말대백과나 광명 등 학술용어 전자사전류나 각종 논문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참조해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최선의 방법은 남북의 정보통신 전문가들이 모여서 용어를 비교 검토하는 것이나, 현재의 여건으로는 안 되니 사전류를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남북이 일치하는 정보통신 용어는 27.7%

이 남북 용어 비교 조사 작업은 ISO/IEC 2392:2005 기준으로 총 3701 개의 표제어가 대상이 되었다. 이들 용어 비교 결과를 형태적으로 비교했더니 띄어쓰기 차이를 제외하고 완전 일치하는 용어인 AA형은 27.7% 정도였다. 그리고 어문규범의 차이, 즉 두음법칙이나 사이시옷, 외래어 표기법 차이 등으로 다른 것(Aa형)은 10.8%이었다. 매크로를 마크로로, 바이러스를 비루스로, 벡터를 벡토르로, 백신은 왁찐으로, 페이지를 페지로 부르는 정도이니 이들은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학문적 소통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유형(AB형)이 61.5%로 더 많다는 점이 문제다. 북한이 광디스크를 빛디스크라고 하고, 메모리를 기억기라고 하는 정도는 비록 차이가 나지만 그나마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직관적 소통이나 이해가 가능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직관적 소통이나 이해가 불가능한 AB3 유형은 꼼꼼한 사전 학습이 필요할 정도다. 예를 들어 그리드 네트워크를 북한은 '살찰망'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런 유형으로 구분된 것이 무려 29.7%에 이른다는 것이다. 백업 파일을 '여벌 파일'로, 컴퓨터 그래픽스 인터페이스를 '컴퓨터도면대면부'로, 반송파 감지를 '반송파수감'으로, 디지털-아날로그 변환기를 '수자-상사 변환기'라고 하니 학문적 소통에 어려움을 줄 것이 자명하다.

같은 기준으로 한국천문연구원의 양홍진 박사팀의 천문 용어 대비 결과는 13.8% 정도가 AB3 유형인 걸로 봐서 학문 분야별로 차이는 있다. 천문학은 역사가 길고 변화가 심한 분야는 아니므로 남북 간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비교적 넓고 차이가 적으나, 정보통신기술은 급격한 변화가 있고 신생 기술이 많은 분야적 특성으로 인해 차이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전문용어의 통일은 가능한가?

언어 공동체의 실현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 편찬 작업에서 보듯이 말과 글의 통일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남북 전문용어의 통일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남북이 아니라 남한 내에서도 통합이 안 되는 현실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결국 통일보다는 통합을 위한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남북의 용어 대비를 통한 상호 이해를 위해 전문용어의 경우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할 것이다. 남북 간의 과학기술 영역 등 전문 영역에서 교류, 협력을 하려면 남북의 ICT 전문가들이 만났을 때를 대비해서 AB3 유형에 해당하는 용어를 익혀 두면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야 북한 학자들과 교류할 때, 북한식으로 '괜찮다'는 의미인 '일 없습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와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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